아래 인터뷰는 2023년 7월부터 10월까지 도계미디어센터 시범프로그램으로 진행된 ‘탄광기록 프로젝트’에 참여한 양지영 작가가 만난 도계 주민들의 녹음파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탄광기록프로젝트 인터뷰 첫번째 : 김수현
1947년생 / 동해시 묵호 출생
때만 해도 일만 나가면 돈을 주니까, 먹을거 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이리로 온 거지. 강원도 묵호, 묵호항 거기서 나가지고 여기 왔지. 여기 들어온지가 13살 때 왔으니까 한 63년 됐네. 묵호에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광산촌은 그때만 해도 일만 나가면 돈을 주니까, 먹을거 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이리로 온 거지. 그때는요 남자는 “부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여자는 “신랑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그랬잖아. 왜냐면 그때는 땅이 비포장이 돼 가지고, 먼지가, 퍼득 빨면 시커멓지고 퍼득퍼득 올라오면 먼지, 애들이 동네에 한 번씩 나왔다 놓으면 코만 입만 내도 전부다 새카만게 생겼다고 새카만게. 이제 뭐 7-80년도부터 이제 개발이 조금 되면서 마당에 이제 포장도 하고, 신작로 시멘트도 하고. 그전에는 기계만 돌아가면 먼지가 새카맣게 넘어와 가지고 이 앞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나 때는 그랬다고. 그때는 이 집도 전부 다 이런 집이 아니었었어요. 판자로 전부 다 이제 못을 박아가지고 천에 살고 이러다가, 그땐 연탄도 진짜 뭐 이런 연탄 보일러나 있었나? 전부 다 요래 탄 뭉쳐가지고, 주먹으로 뭉쳐가지고, 방에 연탄 피우다가 가스에도 취하고... 부엌방이 있으면 여기다가 부엌을 만드는 거지. 화덕을 만들어가지고 불을 피우면 불이 이제 방안으로 들어가지고 거시기 하는데, 그건 이제 탄가스에서 냄새가 들어가면 가스 취해가지고 경우에 따라서 죽는 사람도 있고, 빨리 알게 되면 이제 살고 이러는데 위험했지. 그러다가 이제 연탄 보일러라는게 나오기 시작해 가지고, 처음 연탄보일러 나올 때는 똘똘마리 동글동글하게 돌아가는 똘똘마리라는 보일러가 있었어. 그거를 방에다가 놓아가지고 연탄불이 들어가게 만들었지. 그래서 조금 개발이 돼가지고 불은 밖에서 피우고 물이 이제 방을 뜨시게 개조를 해가지고 나오기 시작한거지. 지붕은 전부 루삔이지. 루삔이라고 잘 모르실 거예요. 그걸 뭐라고 그러나, 도로포장같은 데다가 골탄(골타르)을 치는 게 있어. 골탄(골타르) 칠해가 지붕을 이은 것도 있고. 안 그러면은 ‘좀 산다’하는 집은 그래도 그나마 함석을 잇는 집도 있고 슬레이트 잇는 집도 있고 그래. |
사택, 당시는 길게 길게 해가지고 이제 칸을 막아가지고는 한칸씩, 두칸씩 해가지고 살았지. 회사 다니면서 점수 좀 딴 사람들은 쉽게 들어갔고, 좀 좋은 데로 들어갔고. 그보다도 좀 밉게 보이고, 아부 안 하고, 자꾸 따지고 이런 사람들은 사택도 잘 안 주고, 줘도 제일 저질 제일 험한데, 나쁜데 이런 데 겨우 주고. 사택 못 들어오는 사람도 많아요. 그때는 사택 들어갈려면 회사에 돈도 쓰고 막 이랬었다고. |
광산에 일하는 게 무슨 일이냐 가서 오늘 뭐 해 뭐 해 그 시킨 대로 이렇게 하는거지.
내가 석공에 들어간지가 79년도 들어가지고 2000년도 말에 명퇴를 했죠. 그전에는 자동차 기술을 가지고 자동차 운전도 하고 산판차 운전도 하고. 산에 나무 베어놓으면 제무시(트럭)에 묶어가지고 거기서 나무 싣고 와가지고 광산 이런 데도 갖다주고 제재소로 들어가고 이런데 댕기다가 도저히 그걸 해가지고는 아들 공부도 못 시키겠고 먹고 살 길이 없더라고. 그래가지고 79년도에 이제 광산에 들어가 가지고 아들 학자금이 나오니까, 그나마 혜택을 좀 보려고 광산에 들어가서 2000년도 말에 아들 다 키워 내보내고 나서 ‘더 있다보면 몸에 병만 들면 더 심해질 것 같고 이제 그만둬야 되겠다’고 2000년도 말에 퇴직했지. 탄 파고 뭐 돌도 캐고 별거 다 했지. 광산에 일하는 게 무슨 일이냐 가서 오늘 뭐 해 뭐 해 그 시킨 대로 이렇게 하는거지. 처음에 점리항에서 있다가 점리항에 물이 차 가지고 도계에 한 달 정도 있다가 물이 빠지니까 그 지하 작업을 하는데 물이 도저히,., 그때 당시만 해도 산마광업소라는게 점리에 있었거든. 산마광업소가 작업을 할 때는 거기서 물을 푸니까 타격을 안 받았는데 그 광업소가 문을 닫고 나니까, 물을 푸지 않으니까 그 물이 차올라오는 거야. 그래가지고 물이 차는 바람에 작업을 못해서 그때부터,,, 탄은 많은데 물 때문에 작업을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동덕으로 갔지. |
힘들어서 먹었다는 것보다도 일단은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이 피곤하니까 한 잔 먹어서 피로를 푸는 거지. 그러다 보면 한잔 두잔 하다 보면 취해가지고는 더 먹자 더 먹자 하고. 술집은 그때만 해도 대포집에 색시 없는 집이 없었어요. 아가씨들이 한 집에 보통 가면 서이 너이는 다 있어. 거기 가면 이제 홀려가지고 술먹는 사람들 많지. 신작로까지 올라가는 게 전부 대포집이야. 진짜 술 아휴 말도 못해 그때만 해도. 내가 한번 집 식구하고 말다툼을 하고 돈을 3,800원을 가져 나가가지고 술을 먹었는데, 날새도록 먹었어요 날새도록. 저 끝에 내려가 가지고 올라가면서 술집을 저 짝 건너로만 한 집에 한 번씩 들리면서 먹었는데 한 집에 들어가서 딱 한 잔, 한 잔 마시고 나와 가지고 또 그 옆에 집에 가면 또 그래 마시고 그랬지. 저짝 한 군데로 올라오는 게 마신 게 187개가 되더라고. 그건 내가 아직 기억을 해. |
'모르겠어 모르겠어’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까막동네라고 얘기를 하니까 그걸 듣고 나서 까막동네 간판에 붙었지.
그때는 여기 전두 전두라고 전두1리 2리 여기가 전두 1리거든 지금도. 이렇게 부르는게 먼지가 워낙 많고 동네가 새카맣다 보니까 사람들이 쉽게 부르는게 까막동네 쉽게 부르는게 이렇게 누가 그냥 지어준 것도 아니고 말로 그냥 뱉어내 쉽게 붙는게 있드만. 까막동네는 워낙 인이 박혀가지고 ‘까막동네를 왜 까막동네 이름 지었냐’ 그러면 여기 벽화 그리는 아들이 와가지고 동네 이름을 자꾸 묻길래 ‘모르겠어 모르겠어’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까막동네라고 얘기를 하니까 그걸 듣고 나서 까막동네 간판에 붙었지.
그게 물탱크예요 물탱크였었다고. 밑에 이렇게 기차 대가리 걸리는 데가 물이 크게 있었어요. 거기서 기차 대가리가 와 가지고 기차가 꽥하고 칙칙폭폭 칙칙폭폭 하는거 연기 퍽 퍽 나는거 거기서 머리 대가리를 이어가지고 여기서 물을 받아가지고 여기서 넣고. 이 물이 넘어가면(넘치면) 아이들이 그 물에서 목욕을 막 하고 난리 났다고. 여기 수돗물이라는 게 없었고 샘물이 있었는데 자연수 샘물을 가지고 물탱크를 만들었어요. 탱크를 맨들어 가지고 이제 아침으로 몇 시에 가서 문을 열면 그 시간이라도 물을 받아가지고 쓰고. 시간을 딱 줘가지고 문을 여니까 문을 잠가놨다고 여니까 그때 물을 못받으면 못 받아요. |
나는 막내를 한 번 굴속에 데리러 갔는데, 막내가 18살 때 그랬나 ‘아빠가 이런데서 일하는지 몰랐다’는 거야. 한 번 들어갔다 나오더니 공부를 안 하고 일한다고 뭐 일을 한다고... 결국 공부는 했지만 그래도 그놈 마음속 그 때문에 나도 애도 먹었지. 내가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가지고 우리 공부 시켜서 뭐 할라고 그러냐고. 아빠 도와주겠다 이거지. 지가 벌어서 아빠 도와주겠다고 그래서 이제 ‘아빠 아빠 일하지 마’. 애들은 너무 착해 우리 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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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M매거진 Vol. 0 글 | 양지영 편집 | 도계미디어센터 ⓒ도계미디어센터 |